1980년 5월의 광주는 언어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날의 고통과 뜨거운 연대, 그리고 잃어버린 삶들을 그 어떤 말이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김상욱, ACC)이 오는 20일부터 22일까지 예술극장 극장1에서 선보이는 오브제 연극 ‘어디로나 흐르는 광주’는 그런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한 작업이다. 오브제 연극이란 대사 없이 오브제와 몸짓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의 공연을 의미한다. 말 대신 사물, 대사 대신 움직임으로 표현한 5월의 광주가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이번 작품은 ACC가 ‘사물의 계보’를 주제로 진행된 ‘2024 아시아 콘텐츠 공연개발’ 공모에 선정됨에 따라 제작됐다. 지난해 시범 공연을 거쳐 관객과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해 본 공연이 완성됐다. 연출을 맡은 적극은 ‘연극을 질문하는 연극’이라는 실험적 작업으로 연극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사물에 부여된 기존의 정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상상력을 펼치는 시도로 2024년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하는 등 “독보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연출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작품 역시 대사 중심의 기존 서사극의 틀을 넘어 사물(오브제)과 퍼포머의 몸짓이 극의 전개를 이끈다. 무대 위를 가득 메운 오브제들은 희생과 상처, 삶과 죽음을 은유한다. 관객은 고요한 공연장 안에서 감각의 언어를 통해 오월을 느끼게 된다.
작품은 천지창조의 7일을 구조적 모티브로 삼아 ‘창조’의 시간과 ‘종말’의 시간을 아우르는 총 8막으로 구성됐다. 각 막은 광주의 상징적 장소를 배경으로 설정돼 있다. 1막은 ‘빛이 있으라’는 창조의 첫날에서 출발한다. ‘통증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는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고통이 빛으로 전환되는 장면을 그린다. 무대를 덮친 환한 빛은 역설적으로 끔찍한 고통을 의미하게 된다. 이후 2막 금남로와 충장로, 3막 신묘역, 4막 상무관, 5막 전일빌딩 등 공간의 기억을 오브제로 형상화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6막에서는 헬기 사격 현장에서 죽음을 맞은 이들이 펼치는 ‘극중극’이 등장하고, 7막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위무(慰撫)의 의례, ‘음복’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8막은 지금껏 쌓여온 오브제들을 하나하나 철수시키는 역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관객은 설명 없이 텅 빈 무대에 남겨지고, 이 고요한 순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광주를 몸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시간’이 된다.
공연은 블랙박스 극장의 공간을 그대로 활용해 고정된 객석 없이 관객이 극장 안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관람하도록 구성됐다. 관객은 무대 위 오브제와 퍼포머의 움직임을 따라 다니며 각자의 방식으로 광주의 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무언의 언어, 정지된 사물, 그리고 움직이는 몸이 관객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조합되는 셈이다.
/장혜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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