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불법성 극복, 5·18 정신 힘 덕분"(무등일보)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5-06-10

조회수 : 35

"유혈사태 없이 12·3 비상계엄의 불법성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5·18 정신의 힘 덕분입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란 한강 작가의 질문처럼, 5·18을 배운 이들이 국회와 광장에 나가 소리쳤어요. 말 그대로 '과거가 현재를 구한' 생생한 사례인거죠."

이재의 5·18기념재단 연구위원의 말이다. 그의 삶은 5·18을 관통한다. 전남대학교 학생이었던 1980년 5월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그는 5·18 민주화운동 최초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공동 집필했다. 또한 내·외신 기자들의 5·18 취재기를 편집, 미국에 출간하는 등 5·18 진상규명·국제화를 위해 평생을 일해왔다.

그는 12·3 비상계엄이 '민주화'에서 '비민주화'로 되돌리려는 시도였으며, 이러한 시도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80년 5월 군사정권의 은폐로 수면 밑에 잠들어 있던 극우 파시즘의 부활이 그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발언은 성별, 지역, 정치 성향 간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민주주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파시즘적 행위다"며 "이를 통한 혐오정서의 폭발이 집회의 폭력성을 유발했고, 이는 민주주의가 바라보는 방향과 정반대의, 허용돼서는 안 되는 행위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문에 등장한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이라는 표현에 대해 "5·18 집단기억의 힘을 법률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며 "오늘날 시민의 평화적 저항이 정당성을 갖게 된 배경에는 5·18 당시 광주시민의 직접민주주의 경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 2030 세대의 태도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계엄과 탄핵심판 과정에서 정치·언론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 헌법·법원 판결를 직접 찾아 스스로 판단하려 했던 대목에서다. 그는 "비판적 지성은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이는 청년 개인의 탁월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민주화 교육의 결과"라며 "청년들이 보여준 새로운 정치 감수성을 수용해 정치권도 새로운 질서를 설계할 책무가 있다"고 주문했다.

젠더 갈등에 대한 분석도 내놓았다. 이 위원은 "남성과 여성의 정치 반응 차이는 단순한 정치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와 역할 재조정이 필요한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이를 단순히 '갈라치기'나 갈등 구도로 해석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이 유연하게 조정해야 할 사회적 과도기 현상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층의 정치 효능감에 대한 실망을 언급하며, 정치권이 가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에 대해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연구위원과의 일문일답.

- 광주 청년들은 12·3 비상계엄 때 언론이나 정치권의 해석을 따르기보다, 계엄법·헌법 조항·과거 탄핵 사례를 직접 찾아보며 스스로 판단하려 했다. 이들의 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이들의 시도는 매우 바람직하다. 이런 비판적인 상황 인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토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각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실천해 왔던 민주화의 성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청년들의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들의 감수성에 맞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비판적 지성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키워나가는데 가장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은 광주·전남 청년들에게 국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다가왔다. 이들의 국가 불신은 어디에서 비롯됐다고 보나.

▲젊은이들이 12·3 사태를 겪으면서 국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한 것은 당연하다. 군사독재의 혹독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동안 국민의 기본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정치제도라는 것을 자각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12·3 계엄은 우리 사회를 과거와 같은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시도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착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체계적인 역사교육이 필요하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반국가 세력 척결'을 언급했다. 청년들은 이 표현이 성별, 정치 성향, 지역 간 갈등을 부추기고 혐오를 확산시켰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편가르기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혐오정서는 얼핏 보면 민주화의 결과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 현상이다. 민주화 때문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과거 군부 독재의 잔재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12·3 계엄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에 대하여 두 개의 서로 다른 입장이 대립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결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과거 군사독재의 변형으로 은폐된 극우 파시즘의 성장 결과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민주주의는 극우 파시즘까지도 용인하는 제도가 아니다. 5·18당시 광주시민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직접 민주주의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진정한 공동체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 한강 작가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많은 울림을 줬다.

▲한강 작가의 화두는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가고 있다. 5·18의 쓰라린 경험은 그동안 집단기억의 전승을 통해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DNA를 확고하게 뿌리 내리게 했다. 12·3계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지적한 '시민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은 5·18의 역사 경험에 대한 집단 기억의 효능감을 법률인의 언어로 우아하게 표현해 낸 셈이다.

-청년들은 정치권과 언론이 젠더 갈등을 '갈라치기 전략'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2030세대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차이가 '정치 성향' 때문인지는 의문이다. 12·3 이후 탄핵 집회를 둘러싼 남성과 여성의 반응은 정치 성향 차이라기 보단 누적된 사회적 현상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민주화 이후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의 형태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때마침 경제성장 속도의 정체로 일자리 부족이 겹치면서 남성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과거 남성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의 점유율이 크게 늘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보인다. 이런 구조적 원인을 도외시 한 채 단순하게 정치 성향 차이, 혹은 젠더 갈등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탄핵 국면에서 2030세대는 광장의 주체로 떠올랐지만, 동시에 찬반이 뚜렷이 나뉘는 양상도 보였다.

▲여성과 남성의 투표 성향 차이를 젠더 갈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정치권의 전형적인 갈라치기, 갈등조장의 연장선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사회변화를 반영한 역할의 재조정이 필요하다. 과거 남성 우위의 사회 질서가 크게 변하고 있다. 산업사회 단계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던 육체 노동은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식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새롭게 생겨나는 분업 형태는 여성의 역할을 확장시킨다. 현재 투표 성향의 차이는 이런 변화가 초래한 과도기적 현상이다. 이를 마치 사회적 역할을 둘러싼 젠더 갈등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정치 영역에선 이런 과도기적 현상을 어떤 방식으로 조정해서 갈등을 최소화하고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것인지를 모색해야 한다.

- 광주·전남 2030세대는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요구하고 있다.

/차솔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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