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5주년>"치열했던 그날 느끼고파"...계승되는 광주의 기억(전남일보)

작성자 : 518유족회

작성일 : 2025-05-22

조회수 : 93

1980년 5월 27일 최후의 항쟁지 옛 전남도청. 새벽 4시가 되자 도청 내부로 들어간 계엄군은 닥치는 대로 총을 쐈고, 도청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당시 이곳을 지키던 시민군은 진입하는 계엄군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결사 항전을 벌였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문재학 열사도 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 산화했다. 시민들은 45년 전 시민군이 흘린 피가 서려 있는 도청을 잊지 않고 다시 찾고 있다.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옛 전남도청은 내부 진입이 불가능하지만 주변은 80년 5월을 기리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도청 앞 분수대에서 만난 대자중 1학년 송예찬(14)군은 “학교에서 5·18 교육을 받으며 전두환의 악행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소름이 돋았었다”며 “도청을 지키던 분들이 많이 무서웠을 텐데도 그곳을 떠나지 않은 정신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옛 전남도청 입구 앞 추모 동상에는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는 국화꽃이 놓여 있었고 화분에는 ‘당신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5·18 기억하겠습니다’ 등의 추모 문구가 담겨 있었다. 민주광장을 오가는 시민들은 발길을 멈추고 동상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김명석(60)씨는 “그날 중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바깥에서 계엄군의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락방에 올라가 몸을 숨겼다”며 “45년이 지난 금남로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오월영령들 덕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당시의 용감했던 항전의 기억들을 간직한 5·18 당사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사뭇 남달랐다. 5·27최후항쟁자 이양현(75)씨는 “비록 오늘 비참하게 쓰러질지언정 역사에서는 승리하자고 마음을 모았던 동지들의 투쟁이 민주주의를 성장시켰다”며 “도청을 지날 때면 젊은 날의 기억들이 떠올라 긍지를 느낀다. 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 나가기 위해 젊은이들이 오월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 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5·18 기념주간 사람들의 발길은 옛 전남도청에 그치지 않고 오월의 기억을 간직한 또 다른 장소로도 이어졌다. 5월을 맞아 임시 개방한 옛 광주적십자병원에도 그날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월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간직한 기억 속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며 각자의 방법으로 영령들의 넋을 위로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은 사적지 11호로 연대와 나눔 ‘대동정신’이 깃든 곳이다. 병원에는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총상을 입은 시민들로 가득했다. 부상자들에게 수혈할 혈액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광주 시민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헌혈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팔을 걷어붙인 시민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졌으며 21~22일 양일간 411병의 혈액이 채혈됐다.

담양에서 온 김리원(42)씨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을 보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고 광주 시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보기 위해 방문했다”며 “전두환 집권 시절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항쟁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5·18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금남로에서 열린 제45주년 5·18 전야제에는 시민 2만여명이 참석했다. 가족 단위, 연인, 친구 등과 함께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그날의 ‘대동세상’을 재현했다.

신창초 3학년 강지안(10)양은 “오늘 전야제에서 민주결사대 미션 챌린지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민주열사들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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